안동을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의 불길은 잡혔지만, 잿더미 위에 남겨진 농민들의 삶은 여전히 타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향한 해당 지역 농협의 지원은 어딘가 엇나간 모습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피해 조합원 맞춤 지원 아닌 일괄 지급

농협중앙회가 산불 피해 지역 지원을 위해 동안동농협에 긴급히 내려준 100억 원은 지역 주민 대부분이 알 정도로 홍보가 된 상태다. 조합원들의 간절한 기대는 ‘피해 복구와 생계 재건’이었지만, 현실은 ‘곡괭이, 삽, 호미’ 등이 포함된 농기구 6종 세트 지급이었다. 그것도 피해 여부와 관계없이 전체 조합원에게 일괄 지급됐다

동안동농협에서 지급한 농기구 6종세트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삽이랑 호미로 농사를 짓냐고요.” 산불 피해 조합원 정모(62) 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기계가 다 하는 세상에, 이건 지원이 아니라 산불 피해를 빙자한 선심성 지급입니다.”

긴급 자금은 지난 4월 17일 농협중앙회로부터 동안동농협에 지급됐지만, 바로 사용 가능한 자금이 아니었다. 100억 원을 예치해 발생하는 이자로 지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동안동농협은 이자 발생을 기다리지 않고 ‘선 집행 후 정산’ 방식으로 조합원 전원에게 농기구 세트를 배포했다.

농협 측은 “피해 농가를 산정하기 어렵고,농기구 소실로 당장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일부 피해 조합원들의 하소연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렇듯 실제 피해 조합원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신중히 논의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 외부 업체 계약과 가격 부풀리기…의문스러운 지원금 운용 방식

더 큰 의문은 물품 구매 과정에서 제기됐다. 구매한 농기구는 산불 피해 지역인 안동이 아닌, 인근 청송군에 위치한 외부 업체로부터 납품받았다. B 조합장은 “오래된 거래처이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 직접 구매를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조합원 2,800여 명 분량의 대량 구매를 감안하면 생산 공장과의 직거래가 훨씬 경제적이고 신속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가격 부풀리기’ 정황도 포착됐다. 해당 농협 경제사업부에서 34,260원에 구입된 물품 가격이 총무과로 넘어가며 38,500원으로 부풀려졌다. 이에 대해 B 조합장은 “경제사업부도 성과를 내야 하지 않겠냐”며 사실상 부서를 위한 ‘장부 성과 만들기’를 인정했다.

◇ 농협 내부 성과보다 ‘피해자 중심’ 지원이 우선돼야

길안면에 거주하는 김모(65) 씨는 “중앙회가 보내준 돈은 선의로 보내진 것인데, 농협 내부 성과를 낼 궁리를 했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힌다”며 “피해 지원 방식에 성의를 다하고, 투명하고 정직하게, 무엇보다 신중한 검토 후에 지원금을 집행해야 피해 조합원들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지적했다.